지금의 서울이라는 도시를  만들어간 저자의 회고록.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에서 서울이 어떠한 과정으로 변화했는지, 생생하게 기록된 자료이다.

항상 일독을 추천받았기에,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게 되었다.

(열람실이 아닌 서고에 비치되어있지만, 매년 대출이력이 있는 걸 보면 누군가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읽는 도중 인상 깊은 구절이나 내용을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도시계획 업무라는 것은 선(線)을 긋는 일이다. 가로계획선을 긋고 공원경계의 선을 긋는다. 어디에서 어디까지는 업무·상업지역이고 그 경계에서부터 어디까지는 주거지역이다. 모두 선으로 표시한다. 말하자면 '선의 행정'이다. 그런데 이 선은 반드시 한 편의 사람에게는 이익이 되지만 다른 한편에는 불이익이 되게 마련이다.

1권 p.98


워커힐 호텔이 1962년 지어지고 난 이후, 서울 동부(특히 광진구, 천호동)등의 발전이 이어졌다. 이후, 여의도 개발이 본격적으로 진행. (시범아파트, 국회 이전 등) 여의도 개발이 진행된 이후, 서울 도심 재개발이 진행. (시청 앞 프라자호텔, 광화문 교보빌딩, 을지로 한화빌딩 등)

 

공유수면매립을 통해, 이촌동/강변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

 

86년도 아시안게임, 88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서울의 재개발사업이 본격화.

 

시민의 주(住) 생활이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뀐 것은 1978년 이후의 일.

 

2권의 주요 내용


'땅을 사두었다가 훗날 그 값이 오르면 매각하는 행위'를 토지투기 또는 부동산 투기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역사상에 이 부동산 투기라는 행위는 적어도 1960년대 전반까지는 거의 없던 현상이다. 일본은 그 현상이 경제 호황이 발생하던 1950년대 후반부터 발생했으며, 한국에서의 투지투기, 즉 가수요에 의한 토지매점 현상은 1960년대 초부터 나타났고, 그것이 표면화된 것은 제3 한강교 가설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였다.

3권 p150~151

 

1960년대 후반에서 1990년까지 25년에 걸쳐 가히 살인적인 지가상승이 계속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제3한강교 개통 이전의 강남 땅값이 서울시내 그 밖의 지역, 강북 기 개발지나 영등포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둘째, 구 도심인 종로, 중구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했다.

셋째, 그것이 강남이었다는 점이다. 한국 국민은 누구나 할 것 없이 6.25 한국전쟁 때, 한강교량 건너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를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 1980년대 말까지 모든 서울시민은 북한에서 다시 남침할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강남에서 거주한다면 아무리 남침해온다 할지라도 부산까지 피난 갈 자신이 있다는 잠재의식, 그것이 서울시민 모두가 지닌 '강남지향의식'이었다.

넷째, 영동 구획정리사업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다.

다섯째,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각종 세금이 면제되었다.

여섯째, 규모가 워낙 커서 공급에 제한이 없었다. 성남, 분당, 평촌, 산본도 본질적으로는 강남에 해당된다.

일곱째, 항상 어떤 종류의 인센티브 또는 개발촉진책이 끊이지를 않았다. 제3한강교, 경부고속도로, 지하철2호선 신설, 고속버스터미널, 남부버스터미널, 고등학교 제8학군, 지하철3호선의 통과, 법원/검찰청의 이전 등등

3권 p158~160

 

핵은 중심을 의미한다. 모든 물체에 중심이 있듯이 도시에도 중심부가 있다. 그것을 도심 또는 도심부라고 한다. 모든 물체에 하나의 중심이 있듯이 도시에도 하나의 중심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중심만으로는 중심기능을 모두 담당하지 못하니 지역별로 중심기 중 일부를 담당하는 부차적인 중심이 생긴다. 그것을 부도심이라고 한다. 서울의 경우를 예로 들면 4대문 안을 도심이라고 하면 영등포, 청량리, 신촌 등은 부도심이다.

3권 p263

 

강북 서울의 지형을 보면 몇 개의 산계(山系)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가지는 산기슭을 따라 발달해와서 4대문 안에 집합한다. 4대문 안은 여러 개 산계의 끝이 모인 분지이다. 그러므로 서울은 부득불 일점집중(一点集中), 단핵의 도시형태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강을 건너면 사정은 달라진다. 강남에도 관악산, 청계산, 구룡산 등의 산이 연이어 있지만 그래도 여의도-영등포-인천을 잇는 광활한 공간이 있고, 관악-청계-구룡의 북녘 역시 광활한 공간을 형성하고 있다. 

3권 p266

 

1950~60년대까지 서울 상류층의 주거지는 종로구였다. 가회동, 명륜동, 혜화동, 동숭동, 효자동, 청운동, 신문로 등이 주거주지였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전반에 걸쳐 새로운 부자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종로구 성북동과 서대문구 연희동, 용산구 동빙고동이었다.  (중략) 동빙고동과 연희동을 마지막으로 강북에 새로운 단독주택 부유층 마을은 조성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의 눈에 띄기 쉽고 관리도 청소도 집 지키기도 곤란한 단독주택 대신에 고급 아파트단지가 등장했다. 대한주택공사가 1970년 용산구 동부이촌동에 한강맨션아파트를 건립한 것이 최초였다. (중략) 그리고 이들 대형아파트 붐은 바로 여의도로 옮겨갔다가 강남구 압구정동으로 번진다. (중략) 한국국민의 주생활이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및 연립주택으로 바뀌게 된 결정적인 고비가 1978년이었다. 영동 아파트지구 개발계획이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었다. 

3권 p356~357


서울시의 세입은 두 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다. 부동산보유세(재산세)와 부동산거래세(취득세, 등록세)가 그것이다. 집값과 땅값이 오르고 부동산의 거래가 호라발해지면 서울시 재정은 튼튼해진다.

4권 p31

 

저자가 (박정희 대통령의) 행정수도가 실패할 거라 생각한 원인을 3가지 제시했지만,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이유는 아래와 같다. 지금의 행정수도 역할을 담당하는 세종시도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예전에도 제시되었던 문제점들은 현재 해결이 되고 있을까? 

- 호주의 캔버라나 브라질의 브라질리아처럼 통치기능만을 가진 신수도는 도시로서의 성장에 한계가 있고 결국은 실패해버린다는 선례가 있다는 점이었다. (중략) 서울 인구집중의 가장 큰 요인은 '잡다한 고용기회'가 첫째이고, 다음이 '자녀교육의 편리성'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의 행정수도 구상에는 잡다한 고용기회를 창출하는 금융, 경제 기능도, 교육의 편리성을 유도하는 고등교육 기능도 포함되지 않았다. 잡다한 고용기회와 교육의 편리성을 수반하지 않는 도시는 결국 정부기관 근무자들만이 단신 부임하는 주간도시(week day city)가 될 수 밖에 없다.

4권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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